매주 월요일 아침 여섯 시 반에 시작하는 미팅은 사실상 그다지 중요할 거리가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지난 한 주 있었던 성과를 늘어놓고, 근시일 안에 있을 갖가지 임무를 배정하고, 담당 인원 유닛을 구성해 각자 따로 모여 브리핑을 받는다. 개중에는 복잡한 안건이나 의견 충돌이 일어나 오래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 봐야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언제나 어수선한 분위기로 시작되어 사무적인 지시만 늘어놓다가 시시콜콜한 잡담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렇게 바늘 하나 떨어지는 소리까지 울릴 정도로 회의실이 고요한 적은 없다는 뜻이었다.

 

“결국 수사를 재개하기로 했다.”


탁, 소리와 함께 서장이 들고 있던 포인터를 테이블에 던졌다. 후루야는 퍼뜩 놀라 고개를 들었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장황한 설명 중간 즈음부터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던 후루야가 무슨 일인지 분위기를 파악하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 건은 쿠라모치, 네가 맡아.”

“네? 나요?”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딴청을 피우던 쿠라모치에게로 쏠렸다.


“그래. 문제 있어?”

“당연히 있죠. 왜 하필 나예요?”


하. 서장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찰나 쿠라모치의 눈이 특정 인물에게로 향하는 걸 후루야는 놓치지 않았다.


“왜냐니. 내가 담당 정하는 데에 이유까지 대야 해?”

“나 말고도 많잖아요. 이런 지저분한 사건은 맨날 나한테만 떨어지더라.”


말투는 더없이 가벼웠으나 묘하게 날 선 분위기였다. 옥신각신 다투는 서장과 쿠라모치를 두고 제일 먼저 일어난 건 이제껏 옆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던 미유키였다. 종이 뭉치를 둘둘 말아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 맨 뒷줄에 앉은 후루야의 의자 등받이를 손으로 툭 친다.


“뭐해? 가자.”





“아까 그거 뭐였어요?”


이른 오전의 텅 빈 고속도로 한중간, 가로변에 위치한 크로마토그래피의 케이스를 열던 미유키는 눈도 돌리지 않고 후루야의 질문에 감흥 없는 되물음으로 답했다.


“그거?”

“미팅 때요.”

“미팅?”


별생각 없이 말끝만 반복되자 후루야가 입을 다물었다. 미유키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었다.


“쿠라모치 말하는 거야? 걔 원래 그래. 그러면서 술 마실 땐 서장이랑 형님아우 한다?” 

“…….”

“원체 알콜 들어가면 정신줄 놓는 놈이긴 하지만. 저번에 다 같이 마셨을 땐 경찰 배지 잃어버려서,”

“그런 거 말고요.”


후루야는 공구함을 뒤져 미유키에게 육각 렌치와 소형 단말기의 연결 케이블을 건네며 말했다.


“분위기요. 이상했잖아요.”

“네가 그런 것도 읽을 줄 알아?”


정말로 예상 못 했다는 태도가 썩 기분 좋지는 않았으나 후루야는 별다른 말 없이 넘어가기로 했다. 미유키의 저 표정은…… 그거다. 둘은 절대 가깝다고 할 수 없는 사이지만 저 얼굴이 뭘 뜻하는지는 진작에 파악했었다. 어색하게 끌어올린 입가와 대조되는 부드러운 눈가—그의 직속 상사가 주로 곤란할 때 보이는 표정이었다.


후루야는 마음속으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그리고 셋이 채 끝나기 전에 입술을 떠나는 얕은 한숨. 그리더니 말없이 아스팔트 위에 몸을 눕히고 기계 밑으로 기어들어 간다. 이번에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건지. 소리 없는 불만을 떠올린 후루야가 미유키의 옆에 쪼그려 앉았을 때였다.


“서부변경대는 연방경찰청 지부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생긴 곳인 거 알지?”

“네.”

“한 4년 됐나. 이온시티 자체가 애초에 계획도시이긴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꽤 신생인 편이거든. 거기 내 칩 좀. 점퍼 주머니에 있어.”

“……설명해주는 거예요?”

“이거 수치 뽑으면서. 오늘 안에 이 구역 다 끝내야 하니까 너도 부지런히 움직여.”


그 말을 직접 실천하겠다는 듯이 금속 박스 아래에서 내부 케이싱을 고정하는 볼트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후루야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던 미유키의 점퍼를 들어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불쑥 나온 손바닥 위에 칩을 올려주었다. 


“만들어질 당시 이온시티는 두 자릿수 정도의 가구만 모여 사는 엔클레이브에서 정식 변경 요새로 승격된 지 얼마 안 된 때였어. 서부는 원래 자원이 풍부했으니까 그만큼 개발이 많이 되고 있긴 했는데, 어차피 돔 바깥이고 다 무인에 원격이었으니 거주민이 많을 이유는 없어서. ……이거.”


두 손으로 가장자리를 짚고 주룩 미끄러져 나온 미유키가 분석기의 입력판을 몇 번 두드리더니 후루야에게 내밀었다. 화면 위에는 다소 복잡하게 선이 그어진 도표가 떠 있었다. 여기저기 산재한 기호는 익숙했지만 맥락이 부족하다. “이게 뭐예요?” 후루야가 묻자 미유키의 검지가 그중 유독 튀어나와 있는 선 위를 가리켰다.


“성분분석기로 돌린 입자 배치도. 망간이 높지? 이 배합을 쓰는 곳은 이제 거의 없거든. 내구성은 좋지만 공정과정에서 산업폐기물이 너무 많이 나와서 버린 방법이니까.”

“서부에서 생산한 게 아니란 건가요?”

“연합국을 통틀어서도 아니야.”


좁은 공간 안에서 울리는 미유키의 목소리가 지나가는 루프의 잔음에 묻혔다. 후루야는 앉은 자세에서 엉금엉금 기어 다시 기계 밑으로 고개를 들이민 미유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슨 샘플 돌렸는데요?”

“저번 주에 네가 주운 실린더 블록.”

“선배가 쓰레기라고 했던 그거요?”

“뭐, 그랬지.”


뒤따라오는 멋쩍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후루야는 눈만 깜박였다. 그걸 굳이 돌아가서 주워왔단 거였다. 한눈에 보고 버리라던 사람이 무슨 변덕이 생겨서는. 


“블라이트라고 들어본 적 있어?”

“네.”


서부의 적, 블라이트. 원래는 우림과 몬순 지대를 통틀어 널리 서식하던 거대 전갈의 이름으로, 현대에 와서는 이 종의 독침에서 추출한 성분을 정제해 만든 약물을 부르는 명칭이었다. 의료용으로도 쓰이지만 단가가 낮고 정제가 쉽기 때문에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한 마디로 마약이었다. 연합국이 전통적으로 골을 썩이던 문젯거리 중 하나로, 이온시티는 특히나 저소득층이 대부분인 변방의 도시였기에 이것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고 있었다. 


적어도 후루야가 아는 건 거기까지였다. 


“약이잖아요.”

“아니야.”

“네?” 


후루야는 반문했다.  


“그럼 뭔데요?”

“몰라.”

“…….”

“적어도 그게 마지막 수사의 결론이었어.”


케이싱의 볼트를 다시 고정한 미유키가 기계 밑에서 기어 나와 가로변에 걸터앉았다. 후루야는 추출한 데이터를 단말기에 저장하는 그의 빠른 손놀림을 눈짓으로 좇았다.


“서부의 적. 연합국의 암세포. 보이지 않는 시한폭탄. 붉은 스타더스트. 전부 공문서에 쓰인 표현들이지만 정작 그 블라이트가 뭔지는 정확히 아무도 몰라. 세간에선 대부분 약이라고 알고 있긴 하지. 너처럼.”

“그게 말이 돼요?”

“실제로 약이기도 하니까. 다만 이건 과거의 이야기이고, 현재 시중에서 블라이트라 불리며 떠도는 대부분은 화학약품을 섞어 만든 향정신성 약물이야. 이것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래봤자 진정제일 뿐이고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서. 상부에서 골 썩이며 찾아다니는 ‘진짜’ 블라이트는 거액에 거래되고 있는 어떠한 무언가인데. 애초에 정체가 뭔지를 모르니까 어디서부터 수사할지도 무얼 파헤쳐야 할지 감도 못 잡는 거지, 뭐. ……자. 여기 이걸 전송하면 끝. 잘 봐뒀어? 저거 혼자 처리할 수 있지?”


미유키가 턱짓으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다음 기계를 가리켰다.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이고 미유키의 손에서 단말기와 케이블을 넘겨받았다. 


“아무런 추측도 없는 건가요?”

“없겠냐. 환각제, 신종 동력자원, 대량 살상 무기, 화학병기, 암호화폐, 바이러스, 장기밀매, 인신매매, 불법 데이터 거래…… 하나씩 다 테이블에 올랐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까이고 다시 오르고 그래.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지.”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후루야는 말없이 기계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생각보다 많은 선과 볼트가 있었다. 무엇부터 건드려야 되는 거지. 눈만 깜박이는 후루야의 시야에 미유키의 손이 불쑥 다가와 왼쪽 상부의 소켓 스크루를 톡톡 두들겼다. 후루야는 조금 머쓱한 기분이 되었다.


“말했듯이 이온시티에 다니는 루프의 반 이상이 불법이고, 그중 대부분이 외부에서 생산된 거야. 아마 운반책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도 불확실해. 서부가 아닌 경로를 통한 밀입이었으면 다른 지부에서 먼저 눈치챘을 테니 평원을 건너 이온시티에 들어온 거라는 게 그나마 확률 높은 추측. 여기까지가 마지막 수사로 드러난 결론이야.”


낡은 케이싱을 열고, 포트를 찾아 케이블을 끼우는 동안 미유키의 설명이 이어졌다. 후루야는 시선을 흘끔 내렸다. 틈새로 보이는 건 쪼그려 앉은 미유키의 하반신이었다. 간간이 체중을 옮겨 실을 때마다 감색 정복 위로 다리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얼핏 눈에 들어왔다. 후루야는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최악이지. 꼬이고 꼬여서 아무도 맡기 싫어하는 사건. 무슨 소린지 알아? 해결해도 난잡하고, 해결 못 하면 경력에만 나빠지고, 아무도 떠맡긴 싫은데 누군가는 해야 하고 본청에서 압력은 계속 들어오고 매번 입안 시기마다 왈가왈부하고.”

“네.”

“서부에선 이런 표현을 써. 옷 속의 선인장. 놔두면 아프니까 빼야 하고 빼려면 우선 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그러면 아프잖아? 그래서 쿠라모치가 그렇게 투덜거렸던 거야.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것의 정확한 정체와 경로를 파악하라니 짜증 나기도 하겠지.”


후루야는 작업을 마치고 기계 밑에서 기어 나왔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건 허벅지 위에 팔꿈치를 괴고 비스듬하게 턱을 받친 미유키였다. 


“연결 끝났어?”

“네.”

“잘했어. 빠르네. 일 배우는 거.”


찰나 짓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는 별다른 의미 없는 버릇 중 하나일 테다. 그러나 후루야는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단말기로 내렸다. 서툰 손길로 데이터를 뽑아 처리하는 동안 둘 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타닥타닥,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텅 빈 도로를 타고 울렸다.


“다 했어요.”

“줘. 나머지는 내가 할게.”

“제가 할 수 있어요.”

“어차피 평생 교통과 업무만 할 건 아니잖아? 이리 줘. 넌 하는 법만 대충 알아놓으면 돼.”


머뭇거리는 사이 단말기를 가져간 미유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을 뻗었다. 그건 그거고. 중얼거리며 늘어지게 기지개를 켠 그가 아직 앉은 채인 후루야를 돌아보았다.


“후루야.”

“네.”

“너 저녁에 주로 뭐하냐.”


예상치 못했던 질문을 받고선 후루야는 요즈음 자신이 보냈던 저녁을 기억 속에서 짚어보았다.


“밥 먹고, 씻고…… 그러다 자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거지?”


고개를 끄덕이니 볼 일은 이게 다라는 듯 휙 뒤로 돈다. 머리 위로 손을 들어 까닥이는 뒷모습이 길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오늘 시간 비워놔. 여덟 시. 데리러 갈게.”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후루야는 희미한 조명에 시야를 적응시키려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것만 빼면 제법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붐비지는 않았고, 느린 비트의 음악이 귀에 거슬릴 정도도 아니었다. 바깥보다 텁텁한 지하실의 공기가 언짢기는 했으나, 집진기를 거쳐 나오는 인공적인 대기의 냄새는 서부에 살게 된 이상 후루야가 하루빨리 적응해야 할 부분이었다. 


가게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은 이들은 반은 낯익은 얼굴, 나머지 반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중 몇 명이 이쪽을 향해 손을 번쩍 드는 것을 보며 후루야는 옆에 선 미유키를 돌아보았다.


“이것 때문에 저녁에 뭐 하냐고 물어본 거예요?”

“그러면 뭐 때문일 줄 알았는데?”


정말이지 매사 할 말 없게 만드는 사람이다, 라고 후루야는 생각했다. “네 환영 파티야,” 귀에 대고 한 마디 속삭인 미유키는 아무 거리낌 없이 쿠라모치와 유이의 사이를 비집고 앉았다. 머뭇거리던 후루야의 자리는 결국 그와 인상을 한껏 구긴 쿠라모치의 비좁은 사이가 되었다. 의자에 몸을 붙이기도 전에 눈앞에 잔이 놓이고, 테이블 전체의 주의가 이쪽을 향하더니 돌연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숙소는 지낼 만하냐. 날씨에 적응은 했냐. 가족이 보고 싶을 텐데 괜찮냐. 수도에 비해 음식이 밋밋할 텐데 질리진 않았느냐.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다 보니 주제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일로 흘러가게 되었다.


“미유키가 잘해주냐?”


이 질문의 어디가 어려웠던 건지 모른다. 후루야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미유키 쪽으로 흘끔 돌렸다. 이쪽 대화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을 줄 알았는데 후루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실실거리는 얼굴은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은 미소라, 후루야는 이다음에 나올 말이 대충 어떤 어조를 담았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날 봐서 뭐 하게. 어서 대답해야지.”

“…….”

“응? 잘해줘? 하긴, 뭐라고 했더라. 성격 나쁘다고 했었나.”


후루야가 뭐라고 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정답이네.”

“신입이 네 장난감이냐? 작작 가지고 놀아.”

“오늘은 걱정하지 말고 마셔. 취하면 미유키가 데려다줄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건 경감.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나무라는 건 쿠라모치. 웃으며 말하는 사람은 경무기획의…… 이름을 기억 못하겠는 누군가. 이런 분위기가 비일비재한 것인지 미유키의 기분이 딱히 나빠 보이진 않았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의미 없는 반론을 두어 번 던진 후 별다른 말 없이 조용히 웃기만 한다. 그런 그의 눈이 후루야의 시선과 허공에서 맞닿았다. 


“혹시 술버릇 같은 거 있냐.”


멋쩍게 고개를 돌리는 중 들려온 건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의 낮은 속닥거림이었다. 왜요, 진짜로 데려다주려고요? 물으려던 질문은 무심코 마주한 얼굴이 지척에 다가온 채라는 걸 확인하고 나자 쏙 들어갔다. 후루야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착각일 수도 있었겠으나 안경 너머의 눈이 순간 반짝인 것도 같았다.


“뭔데?”

“……자는 거요.”


그럴 줄 알았다, 웃으며 조아리는 미유키의 낮은 목소리가 신기하게도 주위의 시끌시끌한 대화 소리에 묻히지 않고 똑똑히 귀에 들어왔다. 이제 사람들의 주의는 완전히 둘에게서 벗어나 있었다. 후루야는 왠지 모르게 목소리가 떨려 나올 것 같아 애꿎은 술잔만 힘주어 쥐었다.


“선배는요?”


나? 되묻는 미유키의 입가에 첫날 보았던 것과 비슷한 장난기 어린 미소가 올랐다.


“어떨 것 같아?”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불필요할 정도로 가깝다. 적어도 후루야는 그리 느꼈다. 시끄러운 가게 안에서 옆에 앉아 있는 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원래 이렇게까지 거리를 좁히는 걸까. 후루야는 모른다. 머리에 피가 마르고 나서부터 꼬박 해왔던 단체생활이었건만 이런 자리에 불려 나온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글쎄, 뭘까. 들릴락 말락 중얼거린 미유키가 술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오늘 볼 수도 있지 않겠어?”


후루야는 테이블 반대편으로 휘적휘적 사라지는 선임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이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대부분이 취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미유키도 마찬가지인 듯했는데, 그때서야 후루야는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건지, 아니면 더는 이끌어갈 가치가 없는 주제라고 생각한 건지. 어느 쪽이든 역시 일부러 저러는 거겠지. 일에 관해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차근차근 설명해주는 사람이면서 본인에 관련된 것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조개처럼 입을 다무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후루야는 그런 그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선을 긋는다기엔 문득 보이는 모습이 과도하게 상냥하고, 숨기는 게 있다기엔 애당초 별것 아닌 질문들이었었다.


“네 파트너 뒤통수 뚫리겠다, 인석아.”


어깨를 툭 치는 손길에 끌려 현실로 돌아왔다. 미유키를 향했다가 후루야에게로 돌아오는 쿠라모치의 눈초리는 마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듯 의미심장해서, 후루야는 민망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미유키에 대해 아는 사실은 전부 이 사람이 이야기해준 것들뿐이었다.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묘하게 친하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 같은 나이라서 그런 걸까, 반추하며 후루야는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무시무시할 정도로 맛이 없는 내용물을 도로 뱉을 뻔했다.


“미유키 자식이 화풀이했다면서?”


화풀이? 입속에 남은 씁쓸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던 후루야의 머릿속에서 일주일 전 재활용 센터에서 있었던 짤막한 대화가 떠올랐다. 그게 화풀이었던가? 가벼운 평소의 태도와는 달리 말에 다소 뼈가 있다고 느끼긴 했으나, 듣기 거북하진 않았었는데. 파트너를 바꾸고 싶으면 말하라던 그 한 마디만 빼고.


후루야는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묵묵히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걔 테스팅 끝난 날에는 좀 날카로워. 자기도 짜증 나겠지.”

“괜찮습니다. 아무 일 아니었어요.”


그때였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듣기에도 하릴없는 주제의 대화는 후루야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나 그 대상만은 달랐다. 한중간에 앉아 술을 홀짝이는 미유키는 말은 없었으나 확실히 입가가 풀어져 있다. 혹시 술버릇이 웃는 건 아닐까, 문득 떠올렸다가 왜 이걸 계속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심정이 되어 고개를 얕게 저었다.


“말해줘?”

“네?”

“미유키에 대해서.”


쿠라모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궁금하지? 그러니까 겁도 없이 본인한테 덥석 물어본 거고.”


뭐라고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여기 사람들은 후임을 놀리고야 말겠다는 사명을 품고 살기라도 하는 건가. 직접 물어보라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쿠라모치가 그에게 해주었던 충고였었고, 그것에 용기를 얻어 대뜸 미유키의 ‘증상’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건 한 주 전의 자신이었었다.


“겁도 없이 물어본 거 아닌데요.”

“지금 나한테 성깔 부리는 거냐? 중앙경찰학교 514기 수석 졸업생님.”


후루야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너, 소문 자자하더라?” 후루야의 어깨를 툭 치는 손길이 술기운 때문인 건지 스스럼없었다.


“네 이름 듣자마자 다들 열변을 토하던데? 그렇게 잘나고 건방진 자식이 또 없다며.”

“…….”

“만점 수료한 엘리트를 정신 나갔다고 변방에 보낼 리는 없으니 네 의사였을 테고. 무슨 억하심정이었는진 모르겠다만 이거 알려지면 꽤나 귀찮아질 거다. 나부터도 궁금하니까.”

“……경사님, 술 마시고 배지 잃어버려서 긴급 민원에 분실물 신고 넣으신 적 있다면서요?”


의기양양하던 쿠라모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익었다. 매섭게 올라가는 눈을 못 본 척 후루야는 술잔을 들었다. 두 번째 넘김은 첫 번째처럼 끔찍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맛으로 먹는지 알 것도 같았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액체는 무미건조하고 메말랐으며 인위적이었다. 


마치 서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아니요.”

“뭐?”

“말해주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후루야는 어두운 조명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미유키의 옆모습을 보며 말했다. 


“제가 알아내겠습니다. 신뢰를 얻는 건 제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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