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가장 중요한 건 그거야. 인력 보존.”


여긴 항상 사람이 모자라거든. 변방이라고 우습게 안단 말이지. 후루야의 한 발짝 앞에서 걸어가는 남자가 말했다. 머리가 벗어졌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진 않았다. 조금 위험하다 느낄 정도로 색색 숨을 쉬며 땀이 흐르는 이마를 훔치는 것이, 후덥지근한 이곳의 날씨가 별로 적성에 맞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일이라고 해봤자 자잘한 정리정돈 급이지만. 매일 살인에, 납치에, 마약 거래에, 굵직한 사건들로 바쁜 수도와는 많이 다를걸세. 다만 지방색이 강한 곳이니 그건 특별히 신경 쓰고, 돔 바깥으로 나갈 일이 있으면 그날 방사능 수치를 꼭 확인하고. 자세한 건 담당이 말해줄 테니……. 아, 그리고.”


힐끔 돌아보더니 후루야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욱 훑는다. 깨끗이 다려 어깨에 각이 잡힌 흑청색 정복 셔츠 위에 잠시, 다리의 앞선을 따라 깔끔하게 한 줄이 그어진 바지에 잠시. 이때만큼은 날카로운 눈빛인 것이, 괜히 공채 출신 서장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게 아닌 듯했다.


“이건 개인적인 충고인데, 너무 튀는 복장은 피하는 게 좋아. 현장에 나갈 때는 점퍼를 걸치도록 해.”

“경찰 제복을 입지 말란 뜻입니까?”

“적당히 가리고 다니란 뜻이네만.”


복도 끝에 나온 문을 열자 너른 공간이 나왔다. 대략 여덟 남짓의 데스크. 일제히 돌아보는 이들이 이곳에 몸담은 인원 전부인 듯했다. 


“인사해. 여긴 후루야 사토루. 오늘 아침에 본청에서 전임해 왔다.”


후루야가 고개를 까닥이자 여기저기서 인사가 들려왔다. 어서 와. 반갑다. 잘해보자. 한 사람씩 눈길을 주고받던 후루야의 시선이 맨 마지막으로 창가의 구석자리에 도달했다. 


등을 지고 비스듬히 앉은 뒷모습. 윈도셰이드 너머로 들어온 아침 햇살 아래에서 둥글게 뻗친 머리카락이 옅은 갈색으로 빛났다. 누가 왔거나 말았거나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다는 듯 네모난 구식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펜을 굴리고 있다. 쯧, 혀를 찬 서장이 손가락을 두어 번 튕겼다. 그제야 행동을 멈추더니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쪽을 보고 눈을 두어 번 깜박깜박. 그러더니 살갑게 눈꼬리를 접고 웃는다. 턱을 괸 채 손만 펴 흔들거리는 태도가 여간 장난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저긴 미유키 카즈야. 자네의 파트너일세.”





지구에 사막, 별에 새벽





「숙소 보여주고, 식당 보여주고, 시간 되면 시내도 돌아보고 그래.」


아무리 첫날이라지만 과하게 널널한 스케줄이었다. 후루야는 흥얼거리며 제 앞에서 걷는 이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착하자마자 누군가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신세의 연속이었다. 처음엔 서 소속 행정관, 그다음에는 서장, 이번에는 직속 담당인…….


거기까지 생각한 후루야는 계급장을 확인하려 시선을 흘끗 내렸다. 그러나 어깨를 덮은 검은색 점퍼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점퍼라. 그러고 보니 아까 분명 나갈 때 뭔가 걸치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만질 줄 알아?”

“네?”

“이거.”


방금 파트너가 된 이의 첫 말이 지극히도 뜬금없다. 후루야는 그의 손끝이 향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격납고 구석에 마셜 되어 있는 순찰용 준중형 하이퍼루프. 말없이 위아래로 끄덕이는 고개를 본 남자는 주머니에서 근접센서 칩을 꺼내 후루야 쪽으로 던졌다.


“해봐, 그럼.”

“첫날부터요?”

“앞으로 네가 있을 곳이잖아. 적응해야지.”


열린 오버헤드도어 밑으로 몸을 숙이면서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한다. 정식 루프는 준경에게 조작 금지 아니었습니까,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법이 있을 터였다. 다만 허물없는 걸 넘어서서 설렁설렁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자의 행동이 못마땅할 뿐이었다. 직속 상관이라기보다는 투어가이드에 가까운 그 태도가.


“안 피곤하지?”


빨리도 물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옆좌석에 타더니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어 뒤로 던졌다. 기동복의 상의에는 궁금했던 정보가 있었다. 어깨의 곧은 선 바로 밑, 팔뚝 위를 가로질러 빗금으로 떨어지는 선 세 개와 마름모꼴의 별이 하나. 그제야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상대를 불렀다.


“수사관님.”

“미유키.”

“미유키 수사관님.”

“미유키.”


……차라리 말을 말지. 후루야는 입을 다물었다. 굳이 조수석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실실 웃는 남자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왜. 불렀으면 말을 해.”

“어디로 가면 되죠?”

“가고 싶은 대로 가. 드라이브하는 거지, 뭐. 여기는 어차피 거기가 거기거든. 워낙 조그만 곳이라서 말이야.”


그러더니 대시보드 위에 발까지 올리고 등을 기대앉는다. 후루야는 더이상의 대화를 포기하고 칩을 검출기에 가져갔다. 계기판에 은은한 블루라이트가 뜨면서 전자 밸브의 낮은 허밍이 울리고 루프의 동체가 떴다. 


바깥은 정오의 햇살이 가득했다. 맨 먼저 후루야를 반긴 건 직통으로 눈을 찌르는 따가운 볕이었다.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가리는데 미유키가 느릿느릿 다가와 후루야의 무릎 언저리에 있던 버튼을 눌렀다. 짧은 기계음과 함께 전방의 스크린이 어두워지며 한결 눈이 편안해졌다.


“감사합니다.”

“뭘.”

“투과율 조정은 자동인 줄 알았어요.”

“원래는 자동 맞아. 난 꺼놓고 다니는 거고.”


굳이 왜, 라는 질문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대신 후루야는 묵묵히 조종에 집중했다. 곧게 뻗은 도로는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한산했다. 국도 옆으로 드문드문 솟은 고층 건물을 지나다 보니 시내로 향하는 램프가 나왔다. 완만한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지던 루프가 하이웨이에 들어서자, 의자에 늘어져 있던 미유키가 몸을 일으켜 조수석 쪽의 윈드스크린을 내렸다. 


덥다.


훅 들어온 바람은 뜨겁고 묵직하고 어마어마한 습기를 동반하고 있었다. 악명 높은 서부의 더위였다. 입을 벌릴 때마다 들어온 먹먹한 공기가 폐부를 짓누르고 기도부터 코끝까지 단숨에 들어찼다. 그러나 딱히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옆에 앉은 이의 말마따나 후루야가 곧 적응해야 할 도시였다. 


“원래 어디 출신이야? 엔자스? 이스트쇼어?”

“에리몬트요.”

“에리몬트? 북쪽?”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덜미에 밴 땀을 손으로 눌러 닦았다. 태어나 열둘까지 살았던 고향의 칼칼한 혹풍이 못내 그리워지는 지금이었다. 


“서부는 처음이고?”

“네.”

“그거 풀어.”

“네?”

“갑갑하면 풀어도 된다고.”


옆자리를 돌아보자 미유키가 검지를 까닥이며 목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다. 후루야는 그가 말한 대로 넥타이의 매듭을 느슨하게 풀고 셔츠 맨 위 단추를 끌렀다. 깃이 닿은 자리에 송골송골 맺혔던 습기가 증발하며 기분 좋은 서늘함을 남겼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스크린을 조절해 준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처음 봤을 때부터 시종일관 미덥잖았던 이 남자가 보기보다 세심한 성격일 수도 있다는.


“제법 하네, 조종.”

“감사합니다.”

“연축기 그렇게 팍팍 누르다가는 사흘 안에 플레이트 나가버리겠지만.”


……방금 칭찬은 취소. 후루야는 속으로 정정하며 인터체인지의 출로 쪽으로 조종대를 틀었다.


“혹시 성격 나쁘다는 소리 들은 적 있으십니까?”


푸핫. 커다란 웃음소리가 경박스럽기 그지없다.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한참 웃더니 아예 몸을 돌려 후루야 쪽을 향해 앉는다. 백미러를 통해 언뜻 보이는 금빛 눈동자가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네, 아니요, 감사합니다, 외에도 할 줄 아는 말이 있긴 하네?”

“…….”

“서장이 적금 깨서 신형 안드로이드라도 장만한 줄 알았다. 조용하고 농담도 못 해서. 지금 보니까 그냥 한 성깔 하는 놈이 낯 가리는 거였어.”

“안 그렇습니다.”

“뭐가. 안드로이드라는 거, 한 성깔 한다는 거, 아니면 낯 가린다는 거?”

“……농담 못 한다는 거요.”


미유키에게서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후루야는 그의 시선을 피해 정면만 바라보았다.





“미유키.”


시내의 메인도로 옆에 루프를 세워놓고 내리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가죽점퍼를 입은 이가 있었다. 한손에 잡은 음료수병을 어깨에 툭툭 치며 다가오더니 턱을 까닥여 후루야를 가리킨다.


“이번에 들어왔다는 신참이야?”

“너 오늘 시외 배근 아니었냐?”

“인물 좋은 거 봐라. 키 무지 크네.”


그는 미유키의 말을 간단하게 끊고 휙 돌아 후루야를 마주보았다. 후루야는 발을 붙이고 똑바로 섰다. 가벼워 보이는 태도였으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경찰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후루야 사토루, 준경입니다.”

“빠릿한데? 경찰학교 출신이라더니.”


인사를 하자 절도 있는 동작으로 답례를 한다. 쿠라모치 요이치다. 같은 부서야. 자신의 이름을 밝힌 쿠라모치의 눈이 후루야를 꼼꼼히 훑었다. 얼굴, 다소 긴장한 어깨, 더위에 걷어붙인 소맷자락까지 옮겨간 시선이 다시 위로 돌아오더니 씨익 웃는 얼굴이 된다. 그래서, 운을 띄우는 장난기 어린 말투가 첫인상과 다르게 꽤나 친근감 있어 보였다.


“우리 파릇파릇한 엘리트 준경님은 어디가 고장 나서 여기까지 오셨나.”

“네?”


처음 봤을 때 알쏭달쏭한 질문부터 던지는 건 이쪽 지방의 특징인 걸까. 그러나 쿠라모치의 주의는 벌써 미유키에게로 옮겨져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좀 하지 마. 사실인데 뭐. 한쪽 팔을 미유키의 어깨에 올리고 체중을 실어 기대선 채 투닥거리는 모습이 꽤나 막역한 사이인 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망가져도 너만큼이겠냐.”

“그만해라.”

“왜. 파트너한테 밉보이긴 싫어?”


왠지 모르게 곤란해 뵈는 미유키의 표정만 빼면. 후루야는 저를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는 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선 채로 있었다. 


“그거 알아? 이놈도 경찰학교 출신이야.”

“닥치지, 좀.”

“이래 봬도 정규 코스 졸업자거든. 지금은 비록 변경 요소에서 데스크 업무만 맡는 퇴물이지만.”


조용히 하라고. 정색하는 미유키를 두고 연신 빙글거리던 쿠라모치가 들고 있던 음료수를 불쑥 내밀었다. 후루야는 물기가 흥건한 병을 두 손에 받아들었다.


“만나서 반갑다, 루키. 앞으로 잘 지내자.”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은 무인 초소의 시그널이라 했다.


처음에는 옅은 푸른색이었다. 깜박. 깜박. 두 번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고 몇 초간의 암흑. 그리고 다시 켜졌을 때는 노란색으로 길게 한 번 깜박. 그리고 다시 푸른 빛.


후루야는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평야를 바라보았다. 사방에 깔린 적막이 미세한 입자가 되어 살갗에 달라붙고 몸에 스며들었다. 어디로 시선을 돌리든 암흑뿐이었다. 발끝에서 한 뼘 앞으로 매끈하게 깎인 인공 벽.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득한 낭떠러지. 끝없이 뻗은 평지. 저곳이.


“바이코누르 평원이야.”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한 줄기 바람과 함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가며 잔음을 남겼다. 루프의 기계음도, 도시 전역에 산재한 기후 조절 트랜지스터의 기동음도 없었다. 있는 거라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꿈틀거리는 거대한 생명이었다. 기괴한 모양으로 틀어져 광대한 벌판을 뒤덮고 사방으로 자라난 덩굴이 마치 대지의 핏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막일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우기니까.”


단지 비가 온다고 메말랐던 땅이 이렇게까지 변하는 것일까. 산비탈의 작은 엔클레이브에서 태어나 대도시에서 자란 후루야로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면을 빼곡하게 채운 뿌리와 그 위로 솟은 줄기와 잔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나뭇잎. 우거진 가지 사이로 부연 밤 안개가 걸려 있었고, 땅 위를 굽이쳐 흐르는 너른 물줄기는 그림자마저도 감추어 버리는 새카만 검은색이었다. 모든 것이 습했고, 무성했고, 생동력이 넘쳤다. 상상 속에서 떠올리던 사막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울창하네요.”

“신기해?”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에서만 자라는 고유종이야. 건기 때에는 괴경塊莖으로 땅속에서 버티다가 우기의 첫 비와 함께 자라거든. 아무것도 없던 황야가 단 이틀 만에 숲이 되는 건 좀 볼만한 광경이긴 해. 가만있어 보자. 그러고 보니 너도 곧 보겠네. 늦어도 8월에는 시작하니까,”


그때였다. 멀리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미유키가 말을 멈추고 가슴께의 홀스터를 더듬었다. 아마 길을 잃은 동물이겠지. 중얼거리며 다시 점퍼 주머니 안으로 손을 넣은 건 몇 초가 흐른 후였다.


“동물도 사나요?”

“응. 많지는 않아.”

“주로 뭔데요?”

“아무래도 계절성 우림이다 보니 큰 동물은 없어. 고슴도치, 물새, 도마뱀……, 작은 여우 정도? 가끔은 때를 놓친 독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어찌 됐건 건기 때보다는 훨씬 안전한 편이지.”


후루야는 잔잔히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이따금 고개를 끄덕였다. 미유키는 사막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었다.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방벽의 어귀부터 지평선 너머에 어렴풋이 늘어선 산자락까지,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중간중간 차가운 새벽의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불어왔다.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고요. 그렇다. 열대의 밤은 시원했다. 후루야가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돔을 보고 싶습니다.


종일 시내를 하릴없이 돌아다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나온 후루야의 요구였다. 서편으로 뉘엿뉘엿 지는 기다란 햇살을 받으며 둘 사이에 불편할 만큼 긴 침묵이 돌았었다. 그러나 대답 없이 루프의 조종석에 타는 미유키를 보며 거절은 아니란 걸 직감했다. 그로부터 장장 두 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이었다. 


후루야는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 손을 들었다. 쭉 뻗은 중지 끝, 분명히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흠칫 놀라 팔을 움츠렸다. 세상의 끝이란 건 예상했던 것보다 적나라한 감각이었다. 강화 유리에서 나온 서느런 냉기가 피부를 타고 들어가 뼈에 새겨지는 것만 같았다.


“뭘 그렇게 놀라. 오면서 비행기에서 봤을 거 아니냐.”

“자느라 못 봤어요.”


다시 커다란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또 한 번의 길고 긴 정적. 앞으로도 이 사람과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온시티에 온 걸 환영해, 후루야.”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준 순간이었다.





방벽 아래의 공터에 놓아두었던 루프로 돌아온 건 새벽 별마저 사라진 늦은 시각이었다. 센서 칩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는 미유키가 내일 있을 일정에 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던 참이었다. 기상은 마음대로지만 일곱 시 반까지는 출근 보고해. 첫날부터 늦으면 서장이 잔소리 좀 할 거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았다. 


돌연 미유키의 눈이 커졌다. 후루야 쪽으로 손을 뻗는 모습이 느린 영상처럼 각인되었다.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움츠린 어깨 위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다. 빡, 소리와 함께 골이 울리고 일순 눈앞이 하얘졌다.


“후루야!”


흐릿하게 들려오는 함성이 아스러지기 전, 뒤에서 다가온 팔이 목에 감기고 우악스럽게 목울대를 짓눌렀다. 옆구리를 압박하던 홀스터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갔다. 철컥, 전방에서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났다. 거의 동시에 후루야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차가운 메탈 관이 꽂혔다.


움직이지 마.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격앙된 피치의 갈라진 음성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흐트러지는 시선을 모으자 이쪽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미유키가 눈에 들어왔다. 흘끔 아래를 보니 목을 조르는 팔 위로 자잘한 원형의 흉터가 가득했다. 아마도 중독자. 쳇. 후루야는 혀를 찼다.


“그냥 쏴요.”

“닥쳐!”

“괜찮아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걸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어차피 남자가 후루야의 품에서 빼앗아 간 것은 핸드헬드 테이저다. 살상력은 없었으니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해도 기절하고 마는 정도였다. 게다가 미유키와 후루야의 거리는 열 발자국 남짓. 미유키가 들고 있는 레일건의 정확도로는 식은 죽 먹기였고 상대는 약에 취해 있는 상태다. 후루야는 상체를 틀어 미유키에게 비교적 쉬운 몸통의 사격 각도를 확보해주려 했다. 깔끔하게 쏘고 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총을 쏘지를 않는다. 쏘라니까요. 어서. 아무리 눈빛을 보냈으나 소용이 없었다. 미유키의 표정은 후루야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이가 딱딱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 것 같았다. 남자의 머리로, 팔로, 다리로 옮겨가는 총 끝이 쉴 새 없이 떨리는 중이었다.


“뭐야. 못 쏘냐?”


등 뒤에서 비웃음이 들려왔다. 순간 미유키의 얼굴에 서린 건 두려움을 넘어선 절망이었다. 둔탁한 통증이 다시 한 번 후루야의 후두부를 강타했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미유키를 향해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후루야는 필사적으로 팔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 천 조각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눈앞의 몸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다음부터 후루야를 움직인 건 본능이었다. 냉큼 기어가 팔꿈치로 등을 찍고 남자의 오른팔을 뒤로 꺾었다. 그리고 테이저를 빼앗아 두 발자국 떨어진 후 발포. 트리거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파드득 뛰어오른 남자의 몸이 잠잠해지고, 한동안 넘어갈 듯 헐떡거리는 호흡만이 좁은 공터를 채웠다.


“……고마워, 후루야.”


후루야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미유키를 쳐다보았다. 새파랗게 질린 그의 손아귀에서 총이 떨어져 기름 자국이 가득한 아스팔트 바닥 위를 시끄럽게 굴렀다. 


“와, 이번엔 진짜 꼼짝없이 죽을 뻔…….”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주저앉는 그의 손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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